“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가진 것도 거의 없는 이들이 갖은 장애를 온전히 정신력으로 버텨내고 마침내 역경을 극복한 사례들을 통해 사실로 증명이 된 경구이다. 하지만 정신력만으로 역경을 극복해내지 못한 이들에게는 허구에 불과한 문장에 불과하다. 무엇이 진실일까? 과연 정신은 육체를 지배할 수 있을까? 정신력으로 역경을 극복한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나에게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오래된 경구는 그저 철지난 유행가 가사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뇌출혈 이후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몸으로 겪으면서 지금은 사실로 믿고 있다.
하버드대 신경과학자로 일하던 중 뇌출혈을 겪었던 질 볼트 테일러는 이 때의 경험을 쓴 책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에서 실제로 뛰어다닐 때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서 계속 상상하는데, 이 방법이 다시 걷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나도 질 볼트 테일러처럼 해보려고 노력했다. 먼저 나는 내 눈이 잘 보였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처음에는 가장 최근 기억인 작년에 차를 운전하면서 시속 180km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때를 떠올리려고 했다. 그 때 앞차들을 추월하던 장면, 차선 변경하던 장면 등등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들을 떠올리려고 했다.
그리고 두어달 뒤에는 기억의 소재를 바꾸어서 열 살 무렵 산에 올라 바라보았던 바다를 회상하고자 했다. 내 고향은 강원도 양양 설악산 밑 동네인데, 동네에 있는 높은 산에 오르면 저 멀리 있는 동해바다가 푸르스름하게 보이곤 했다. 눈을 감고 이 기억을 회상하면 실제로 눈이 먼 곳을 보는 것처럼 눈동자가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회상’하는 방법 외에도 생각을 하려고 집중하기도 했다.뇌출혈(뇌졸중) 발병 후 두어달이 지나면서 시야장애 중 가장 나를 괴롭혔던 건 겹보임(복시) 현상이었다. 그래서 이 현상을 없애기 위해 ‘겹쳐 보이지 않고 잘 보인다’고 계속 생각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겹보임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느낌일 뿐 실제로 겹보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정신 치유법은 효과가 없는 것일까? 내 마음 속에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정신 치유법을 소홀히 하던 때 노먼 도이치가 쓴 <기억을 부르는 뇌>를 읽으면서 정신이 실제로 어떻게 몸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버드 의대 뇌자극 실험실 센터장인 알바로 파스쿠알-레오네는 실험을 통해 우리가 단지 상상을 이용해서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레오네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는 두 집단의 사람들에게 일련의 멜로디를 가르쳤다. 방법은 어떤 손가락이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면서, 연주되는 음들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정신훈련’ 집단의 사람들은 전자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서 하루에 두시간씩 5일 동안 자신이 그 멜로디를 연주한다고 상상하면서, 연주되는 멜로디를 들었다. 두 번째 ‘신체훈련’ 집단의 사람들은 하루 두시간씩 5일 동안 실제로 음악을 연주했다. 두 집단 모두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실험하는 도중에 날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난 다음에 뇌 지도를 작성했다. 그런 다음 실험자는 두 집단 모두에게 연주를 시키고 컴퓨터로 연주의 정확도를 측정했다.
레오네는 두 집단 모두가 그 멜로디 연주를 학습했고, 두 집단 모두에게서 뇌 지도의 변화가 유사하게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정신 훈련만으로 실제 곡을 연주할 때와 똑같이 운동계 안에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5일이 지났을 때 근육으로 보내는 운동신호에서의 변화는 양 집단에서 똑같았고, 상상 연주의 정확도는 실제 연주가 3일째에 보여주었던 정확도와 같았다. 정신훈련집단에서 5일 만에 이룩한 발전의 수준은 상당한 것이기는 해도, 신체 훈련 집단에서 보여준 것보다는 떨어졌다. 그러나 정신 훈련 집단이 정신 훈련 직후 딱 한 번 두 시간 동안 신체훈련을 받자, 전체적인 연주 수준이 신체 훈련 집단에서 5일째 보였던 수준만큼 향상되었다. 정신훈련이 최소한의 신체훈련으로 신체적 기능을 학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 <기적을 부르는 뇌> 8장.
레오네가 밝혀낸 사실은 후에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생각이 육체를 움직인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펠덴 크라이스 테라피를 행할 때였다. 펠덴 크라이스 테라피는 바닥에 편하게 누워(베개없이) 몸을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서 몸을 치유하는 테라피인데, 누워서 목을 천천히 들어올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목을 실제로 들어올리지 않고, ‘목을 들어올라자’라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 목을 실제로 들어올리는 것처럼 목과 어깨 근육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은 대부분 왼쪽 근육에서만 통증으로 느껴졌는데, 그 까닭은 당시 내가 왼쪽 어깨 오십견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겪은 체험이었다.
두 번째는 이명을 고치기 위해 눈돌리기를 할 때였다. 종일 눈돌리기를 하면 기진맥진해서 밤이 되면 눈을 돌릴 힘이 하나도 없게 된다. 그래서 혹시 내가 눈돌리기를 상상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눈돌리기를 하는 내 눈을 핸드폰으로 촬영한 뒤, 그 모습을 내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나의 뇌에 기억된 눈돌리기 하는 장면을 천천히 상상했다. 그러자, 실제로 눈이 돌아가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물론 실제로 눈을 돌려 눈돌리기를 할 때처럼 쌩쌩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금 눈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런 특별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누구나 정신이 육체를 움직인다는 것을 체감한다. 배가 고플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면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야한 생각을 하면 신체의 일부가 변화하는 것도 정신이 육체를 움직이는 증거이다.
노먼 도이치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어떤 행동을 상상하는 것과 그 행동을 하는 것은 뇌의 작용에서는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눈을 감고 ‘다’라는 글자를 시각화하면, 실제로 ‘다’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후두엽 시각피질에 시냅스 연결이 이루어진다. 뇌스캔을 해보면 행동할 때와 상상할 때 뇌의 같은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또한 우리는 몸이 할 수 없는 걸 뇌로 상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상상해보라. 젓가락질이 되는가? 그러면 이번에는 오른손으로 젓가락질 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왼손으로 할 때와 차이가 느껴지는가?
당신은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상상되었다면 그것은 상상이 아니라 공상이다. 무슨 차이인지 알고 싶다면, 실제로 젓가락을 가져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해보자. 그런 다음 젓가락을 놓고 조금 전에 한 젓가락질을 상상해보자. 이제 차이가 느껴지는가?
생각이 육체를 움직인다는 것을 체험한 나는 시각장애와 이명을 고치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그 결과를 내 몸으로 실천해 보았다. 그리고 정신의 작용을 두 가지로 분류하고, 또 정신과 육체를 같이 사용하였다. 정신의 작용 두 가지 중 하나는 ‘회상’이고, 하나는 ‘명령’이다.
‘회상’은 과거의 경험을 기억 회로에서 끄집어내서 떠올리는 것이다. 회상을 하게 되면 엔그램에 저장된 당시의 시청촉후미각적 이미지가 그대로 되살아나 신경회로 배선이 이루어진다. 질 볼트 테일러가 뇌출혈 마비로 걷지 못할 때 과거에 자신이 뛰던 장면을 회상한 순간, 뛰던 당시처럼 운동뉴런의 회로 배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배선이 계속 연결되도록 하면, 조만간 실제로 걷을 수 있게 된다. 질 볼트 테일러의 책을 보면 잘 나와 있지만, 그녀는 뇌출혈 후 병원에 입원했다가 얼마 안 돼 퇴원했다. 그리고 집에서 스스로 회복해 나갔다.
또 다른 방법인 ‘명령’은 명령어를 생각하는 방법이다. 즉 ‘걸어’라는 명령어를 생각하면, 몸은 걸을 때처럼 움직이려 한다. 이 방법은 여러 가지 경우에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플 때는 세포에게 명령하면 된다. ‘뱃살에 지방이 많으니까 지방의 에너지를 먹어.’ 나는 통증을 없앨 때 효과를 보았다. 통증은 몸이 통증 부위에 이상이 있으니까 사용을 중지하라는 신호를 뇌에 보내는 것이다. 문제는 신호를 한 번만 보내면 되는데 계속 보낸다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접수했어, 아픈 거 아니까 그만 보내’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웬만한 통증은 사라진다.
나는 명령법을 이명 치료와 오른눈 치료에 주로 활용하고 있다. 이명은 5월 1일과 3일 두 차례 종일 눈돌리기를 한 이후에는 매일 한 시간 정도만 하고 중단했다. 그 이유는 5월 11일부터 왼눈 시각 장애가 두어달 전으로 퇴행했기 때문이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눈운동도 작용한 것 같아 눈돌리기를 중단했다. 그래서 이명 치료는 하루에 서너번 정도 명령을 내리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명령은 구체적으로 이루어질수록 효과가 더욱 크다. 예를 들면 상상으로 통증을 치료한 모스코비츠는 ‘신경 회로 연결을 끊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명 치료를 위해 ‘좌측 측두엽 1차 청각피질 뉴런 칼륨 이온 통로 닫아’라고 명령한다. 왜냐하면 시냅스 연결이 이루어질 때는 나트륨 이온 통로가 열리고 시냅스 연결이 끊어질 때는 칼륨이온통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효과가 있냐고? 한 5일 전부터 가장 최대로 낮아지더니 그 크기가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 5월 초에 이비인후과 가서 청력 검사를 했더니 4,000데시벨에서 난청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즉 이명이 있어서 4,000데시벨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때 이명 크기에 비하면 삼백 데시벨 정도 되려나, 잘 모르겠다. 이명이 완치되면 다시 병원에 가서 청력검사를 해서 이명이 완치되었음을 증명할 계획이다. 하여튼 그래서 뇌졸중 치료에는 뇌에 관한 공부가 중요하다. 내 경험으로는 뇌에 관한 지식이 쌓일수록 이명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었다.
마지막 정신 치료법은 명령 또는 회상을 육체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왼어깨는 이십여년 전 사고로 완전히 작동되지 않는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샤워할 때 타올을 왼손에 들고 오른팔 겨드랑이를 닦으려고 하면 닿지 않는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 어깨 운동을 하면서 나는 왼손에 명령을 내린다. ‘오른팔 겨드랑이를 닦아’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나는 할 수 있어”가 아니라 “해”이다. 치유는 “CAN”이 아니라 “Do It”속에서 이루어진다. 내 몸 치유는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생각명령이 집중이 안 되되면 입으로 명령을 읊는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좌측 측두엽 청각피질 뉴론 칼륨이온통로 닫어’를 계속 읊는다. 그러면 훨씬 집중이 잘 되는데 읊다보면 기도 비슷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기도빨로 병 고쳤다”는 얘기가 이래서 나온 건가 싶다. 즉 기도는 생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생각은 시냅스 변화를 일으켜 몸을 치유하는 것이다.
회상과 육체를 같이 사용하는 방법을 나는 ‘상상 속의 나 호출’이라고 이름지었다. 나는 매일 팔굽혀펴기를 하는데, 하면서 머리 속으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등산할 때 오르막이 길거나, 계단이 많아서 힘이 들 때는 계단을 오르는 나를 상상하면서 올라간다. 힘이 덜 들고, 더 많은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 즉 생각이나 명상으로 몸의 병과 뇌졸중으로 인한 각종 장애를 고칠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모스코비츠의 사례에서도 본인과 한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환자들은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매사에 즉각 결과를 보기를 원한다. 비침습적 치료보다 약물이나 수술을 더 선호하는 까닭이다. 정신보다 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자가 치료 방법 중 하나가 펠덴 크라이스 테라피이다. 펠덴 크라이스 테라피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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