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뇌에서 피가 난다고? 근데 왜 왼쪽 눈이 안 보이는 거지?’

나는 뇌출혈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도 몰랐고, 내 마음은 오직 왜 눈이 안 보이는가에만 쏠려 있었다. 오른쪽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통증은 링겔에 혈압을 내리는 약을 투여하면서 사라져갔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하필 오른쪽 눈에 통증이 왔을까 궁금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의사에게 설명을 듣지 못했다.(다음 방문진료시 물어 볼 것!)

뇌출혈 판정이 난 뒤,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나중에 보니 뇌혈관집중치료실이었다. 뇌출혈이나 뇌경색 등 뇌혈관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만 모아놓은 치료실이었다. 이곳은 보호자조차도 하루에 면회시간이 10분으로 제한되어 있고, 보호자 아닌 방문객은 하루 1명에 한해서만 면회가 가능했다. 보호자조차도 치료실 출입할 때에 ID카드가 있어야만 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뇌출혈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병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열시쯤, 해외여행 갔다가 막 귀국한 아내가 도착했다. 나는 괜찮다며 놀라지 말라고 안심시켰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냐면 아내는 병치료계의 프로였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20185월에 전정신경염(어지러워서 걷지도 못한다)과 급성 당뇨 그리고 당뇨합병증인 황반변성으로 인한 실명위기(실제로 앞이 안 보였다)까지 겪었는데, 평생 당뇨를 껴안고 살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자기만의 치료법을 개발하여. 8개월 만에 당뇨완치판정을 받아 의사가 두손 두발을 다 들게 한 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주치가가 웃으면서 오더니 이제 술 다 드셨네요하는 것이었다. “너무 웃으시는 거 아니예요.”라며 대꾸하며 한심을 쉬었다. 의사로부터 나의 뇌출혈 증세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우측 후두부에 뇌출혈이 발생했고 뇌의 우측과 신체의 왼쪽이 연결되어 있어 왼쪽눈이 안 보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좌뇌는 신체의 오른쪽, 우뇌는 왼쪽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내 몸으로 직접 그것을 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눈앞이 안 보여서 걱정되고 답답하기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신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눈은 멀쩡한데 뇌가 보지 못하는 것이라니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이 들었다.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마지막으로 의사는 경미한 뇌출혈이므로 뇌를 여는 수술을 하지는 않고 경과를 두고 보자고 했다. 출혈이 멈추고 피가 스며들 때까지는 2~3개월정도 걸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왼쪽 눈의 시력에 대해서는 사흘 뒤 퇴원을 앞두고 정확한 설명을 들었는데, 피에 적셔진 뇌세포는 죽으며, 죽은 뇌세포는 절대’(레지던트는 절대를 강조했다)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몇 십 년 뒤에 뇌CT를 찍어도 죽은 뇌세포가 그대로 찍힌다고 했다. 그리고 내 왼쪽 눈 시력은 그대로인데 시야가 좁아진 것이라며, - 정확하게는 시야를 담당하는 일부 뇌세포들이 죽은 것이다 - 다른 뇌세포들이 죽은 뇌세포의 기능을 대체하거나 내가 적응하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했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들었던 생각은 다른 세포들은 피에 젖었다고 죽지 않는데 왜 뇌세포는 피에 젖으면 죽는 걸까’ ‘다른 세포는 다 재생되는데 뇌세포는 왜 살아나지 못하는 거지라는 두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한편 나는 의사의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나의 뇌세포는 다시 살아날 것이며 반드시 원래대로 시야를 회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뇌세포가 살아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야는 뇌출혈이 일어나기 전의 8,90퍼센트 정도 회복된 걸로 추산된다. 뇌출혈집중치료실에 있을 때 장님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고 휘저으며 걸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회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죽은 뇌세포는 절대 살아나지 않는다는 의사 말은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그다지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일부 뇌세포의 죽음은 에 달하는 뉴론(neuron, 신경세포)의 네트워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네트워크 상에 있는 일부 뇌세포가 죽었다면 그 뇌세포를 우회하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로를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마치 인터넷 망처럼 말이다. 그리고 죽은 뇌세포가 살아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여튼 경미한 뇌출혈 환자였던 내가 병원에서 받은 치료라고는 혈압을 내리는 약을 투여받은 것뿐이었고, 그마저도 혈압이 안정화되자 더는 약을 투여하지 않았다. 이튿날부터는 집중치료실이 있는 8층으로 제한해서 걷기 운동을 해도 된다는 의사의 처방이 내려졌다. 의사는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많이 걸으라고 했다.

나중에 다음과 네이버에서 뇌출혈로 검색해보니 뇌출혈 전조증상이라는 자동검색어가 뜨는 것을 보았다. 참고로 뇌출혈 전조증상을 말하자면 내가 겪은 시야가 이상하게 보이는 현상, 엄청난 통증을 일으키는 두통(나는 안통이었다), 언어능력 저하, 팔다리 마비 등이 있다. 의사들은 이런 종류를 전조증상이라 하던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전조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보이는 기미인데, 뇌출혈은 출혈이 시작되어야만 이런 증상이 생기기 때문에 전조증상이란 표현보다는 초기 증상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다. 뇌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뇌에 문제가 생긴다해도 인간은 이런 초기 증상을 통해서만 뇌출혈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뇌세포에게는 피가 독과 같기 때문에 뇌출혈이 발생하면 초 단위로 뇌세포가 죽어간다. 따라서 얼마냐 빨리 병원에 가느냐에 따라 이승에 남느냐 저승에 가느냐가 달려 있고, 살았다 하더라도 머리를 여는 수술을 하게 되는지의 여부가 달려 있다. 병원에서 내가 들은 사례로는 술에 취해 들어온 아들이 주말 내내 방에서 꼼짝도 안하기에 자는 줄 알고 내버려뒀는데 월요일이 되어서도 일어나지 않기에 그때서야 병원으로 데려갔으나 너무 늦어서 두개수술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뇌출혈이 발병하고 12시간 뒤에서야 병원에 갔는데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처음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을 때 119에 전화하지 않은 걸 무척 후회했다. 내 옆에 있던 환자는 아침에 신발 신다가 다리 마비로 쓰러져서 병원으로 왔으니 무척 빨리 온 셈이었다. 근데 이 환자는 재발이었다!

뇌출혈은 뇌졸중의 일종으로, 뇌졸중(腦卒中)은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나눠진다. 뇌졸중은 맞춤법 시험에서 사람들이 많이 틀리는 단어 중 하나로, 뇌졸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뇌졸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중풍으로 불렸던 병으로, 중풍의 중도 가운데 중()을 쓴다. 이에 대해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왕륜(王綸)이 말하기를, ‘병에는 감()과 상()과 중()이 있다. ()은 병이 털과 피부에 있는 것으로서 가벼운 것이다. ()은 피부와 근육에 겸한 것으로서 병이 꽤 무겁다. ()은 사람의 오장육부에까지 들어간 병으로 가장 무서운 것이며, 중한(中寒)이니 중풍(中風)이니 중서(中暑)니 중습(中濕)이니 중기(中氣)니 중독(中毒)이니 하는 따위와 같은 것이다.’ ()이란 말은 사악한 것이 속에 들어간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중병(重病)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뇌졸중에 가운데 중자가 쓰이는 이유는 몸속에서 발생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자는 죽음이란 뜻이다.

이튿날 내 옆 침대에 입원한 환자는 뇌경색이었는데, 뇌경색은 피가 뭉쳐 만들어진 혈전이 혈관을 막아 생긴 것으로,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뇌세포가 죽는 병이다. 이 환자는 다른 건 멀쩡했고 팔다리만 마비되었고 그마저도 가벼워서 다음날부터는 혼자서 걸어다녔다.

, 나의 뇌MRI를 본 레지던트가 나이는 젊은데 뇌의 노화가 심하다고 했다. 몇 개월 뒤, 담당 주치의에게 뇌의 노화가 심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말인즉슨,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여러분들의 뇌도 노화가 심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알콜은 특히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에 치명적이다. 술을 끊던지 치매에 빨리 걸리던지 여러분들이 선택할 일이다.

Posted by Ch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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