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왔다. 눈이 안 보이지만 - 정확히 말하자면 왼눈은 뇌가 못 보는 것이지만 - 시끄러운 병원을 벗어나 집에 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의사가 예정했던 것보다 다소 빨리 퇴원한 것이 마음에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다. “재발율도 4%에 불과하다는데, 뭔 일 있겠어

다만 혈압계를 사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좀 찜찜하기는 했다. 퇴원하기 전 받은 교육에서 혈압기를 구매해서 아침, 저녁으로 혈압재고 혈압수첩에 기록했다가 의사 만나러 올 때 가지고 와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구매하면 14만원, 온라인쇼핑몰에서 사면 그 반값인 7만원이었는데, 어디서 사야할지 결정하지 못해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해보자고 하고 사지 않고 그냥 집으로 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내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고, 자기와 같이 매일 앞산에 오르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조금 두려웠다. 아직 혈압이 잡히지 않았는데, 산에 올랐다가 혈압이 올라가는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만 좀 두고 보자고 했다. 그렇게 그날 밤을 무사히 지내고 날이 밝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눈과 그 주위에 약간이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뇌출혈 당일날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괜찮아지겠지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간단하게 과일과 계랸을 먹고 혈압약을 먹었다. 의사는 혈압약 세 알을 매일 아침에 먹으라고 지시하였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안통이 가시지 않았다.

혈압계가 있으면 혈압을 재보면 좋으련만

하지만 혈압계는 사오지 않았다.

안통이 심해지는게 출혈이 다시 시작된건가, 혈압이 치솟는거 아니야?’

아내는 등산을 한다고 집을 나섰고, 통증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으나 점점 안통이 커지는 것 같고, 공포가 밀려왔다.

안 되겠다아내에게 전화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퇴원할 때 받은 뇌혈관 환자를 위한 분당서울대병원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제 퇴원한 이철입니다. 안통이 심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일단 내 얘기를 들은 뒤 잠시만요하더니 예정보다 일찍 퇴원하기도 했고, 저희도 불안하니 119불러서 병원으로 오세요.”하는 것이었다.

119대원이 도착했는데, 며칠 전 새벽에 나를 병원에 데려갔던 그 대원들이었다. 앰뷸런스 안에서 혈압을 쟀더니 150이 나왔다.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중환자용 응급실로 데려가더니 CT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간호사들이 달라붙더니 양쪽 팔에 링겔을 꽂고 바로 CT실로 향했다. 촬영이 끝나고 기다리면서 간호사에게 물어 보았다. 링겔 꽂은 건 무슨 작용을 하는 건가요? 아무 작용도 안 한단다. 근데 대체 무작정 왜 꽂은 걸까? 주사 꽂느라 혈관에 구멍만 늘어났고 그 구멍은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이 드니 재생이 더디다.

몇 십 분이 지났을까. 의사가 오더니 CT상으로는 크기가 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최초 출혈 뒤 더 이상의 출혈은 없다는 뜻이었다. 의사는 지금 병실이 없으므로 입원하시고 싶으시면 병실이 날 때까지 기다리시던지, 아니면 집에 가시던지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집에 간다고 했다.

한 달 뒤 전담의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나처럼 젊은 나이에 뇌졸중이 온 환자들은 대부분 공황장애가 온단다. 심하면 약을 처방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리 심하지 않아서 약을 처방하지는 않겠단다. 그러니까 이 날의 응급실 재방문 소동은 나의 공황장애가 빚어낸 공포 때문이었다.

공황장애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는데, 한번은 퇴원하고 나서 며칠 뒤에 버스를 타고 서울을 가면서 겪었다. 처음에 서울행 좌석버스를 탔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점점 사람이 많이 타더니 입석까지 꽉 들어차는 것이었다. 사람이 꽉 들어차고 그들이 내뿜는 열기로 버스 안 공기가 답답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내 마음이 답답해지고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버스 안이 너무 좁다고 느껴졌고, 옆에 서 있는 사람 등 버스 안의 모든 사물이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2개월이 지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혈압기를 사가지고 왔다. 혈압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은 답답할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눈 앞은 여전히 잘 안 보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는데, 아내가 등산을 가자고 했다.

잘 보지는 못하는데, 어떻게 산에 가..”

스틱 잡고 천천히 가면 돼. 내가 앞에서 봐줄게.”

자신은 없었지만 따로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 일단 뭐라도 해보자’ ‘산에서 굴러 떨어지더라도 일단 가보자

나는 뇌출혈 발병 두 달 전에 담배를 완전히 끊었었고, 한 달 전부터는 등산을 시작했었다. 등산은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집 앞에 등산로가 있는 해발 4백미터 높이의 산이 있어서 운동하기가 무척 좋았다.

양 손에 스틱 두 개를 단단히 움켜 잡고 천천히 움직이며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양쪽 눈은 온통 발밑을 쳐다 보면서, 한편으로는 다음 발 디딜 곳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발병 전에 뛰어다녔을 정도로 넓게만 보였던 등산로는 무척 가느다란 실선 하나 정도의 폭으로만 느껴졌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스틱을 잡은 팔에 힘을 꽉 주어야만 했다.

어느 정도 걷기에 적응이 되자, 나는 걸으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는 뇌세포들아! 깨어나라!”

잠들어 있는 뇌세포들아! 깨어나라!”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나는 다 나을 수 있다’, ‘나는 예전처럼 볼 수 있다.’

죽은 뇌세포는 절대 살아나지 않는다고 한 그 레지던트를 생각하며 꼭 재생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결심을 다졌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3년 안에 내 몸의 세포를 전부 건강한 세포로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전에 책에서 보았던 인간이 몸은 3년 동안 먹은 음식물로 구성되어있다는 문장이 생각나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포가 바뀌는 주기는 장기마다 달랐다. 허파세포는 2~3주마다, 간세포는 5개월에 한 번씩 만들어진다. 창자세포들이 교환되는 데는 2~3일이 걸리고, 4개월에 한 번씩 중고적혈구들은 새로운 적혈구들로 바뀐다. 피부세포들은 시간당 3~4만 개씩 죽어 매년 3.6킬로그램이나 되는 세포가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발병 전에는 한 시간 걸리던 거리를 세 시간에 걸쳐 첫 날 등산을 마쳤다. 등산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쇼파에 뻗었다. 온 몸에 힘을 바짝 주고 걸었던 탓에 특히 등 위쪽으로 신경이 뻗쳐서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몇 시간을 누워 있어야만 했다.

등산을 한 번 갔다오자 자신감이 들었고, 나는 반드시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을 다질 수 있었던 점이 나에게 무척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그 이후로 45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가오나 눈이오나, 미세먼지가 아무리 심해도 하루도 등산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등산을 갔고, 영하 10도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산에 올랐다. 몹시 추운 날에는 군대 있을 때 체감기온 영하 30도의 날시에 알통구보를 시킨 소대장 생각을 하며, ‘그래 옛날에 알통구보도 했는데, 영하 십도쯤이야하며 산에 올랐다. 겨울에 산에 오를 때는 영하의 날씨에 혈압이 올라갈 수 있으므로 늘 모자를 쓰고 운동을 해야 한다. 등산을 시작한지 한 달 뒤, 나는 예전처럼 뛰어서 등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을 다시 한 시간으로 단축하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등산을 통해 내 뇌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운동을 통해 치유할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등산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숨을 헐떡일 정도로 깊은 호흡을 하게 되는데, 깊은 호흡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뇌세포들이 훨씬 건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Posted by Ch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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