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들은 치유가 어렵다. 그 이유는 뇌졸중이 불치의 병이라서가 아니다. 어려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환자 스스로가 치유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환자를 철저히 대상화한다. 의사들은 그저 환자가 의사 지시 잘 따르고, 주는 약 잘 먹고, 주사 잘 맞고 하기를 강권한다. 이에 길들여진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수동적 자세로 의사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뿐이다. 온갖 전문용어로 이루어진 의학은 배울 수도 어려울뿐더러 병만 나으면 다시 안 볼 터이니 귀찮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뇌졸중은 그렇게 해서는 치유가 어렵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약 한 달만 먹으면 시력이 예전처럼 되돌아와요하는 약 있으면 그저 그 약만 먹고 싶은 심정이다. 먹고 사느라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내가 왜 뇌과학까지 공부를 해야만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뇌출혈 이후 죽거나 상처 입은 뇌세포를 되살려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예전처럼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철저히 환자가 회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특히 나처럼 치유법에 관해서 어떠한 의사로부터 지시나 조언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은 혼자서 알아서 해야 했다.

온통 좌충우돌이었다. 이 방법이 맞을까,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며칠 해보다 자포자기하기 일쑤였다. 뇌에 좋은 운동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한 동영상에는 어느 서울대생이 나와서 양 손을 배에 대고 왼손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오른손은 배를 통통 두드리는 방법이 뇌에 좋다고 소개했다. 나는 열심히 따라했고 전에는 따라하지 못했던 이 방법을 금방 숙달했다. 하지만 이게 나 같은 뇌출혈 환자에게 도움이 될 까? 의문은 끝이 없었다.

하루는 뇌에 전기자극을 줄 수 있다는데, 내 뇌세포에 전기자극을 줄 방법이 없나하는 궁리도 해보았다. 전기자극을 주면 나을 것도 같았다. 검색해도 뇌에 좋은 운동법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뇌에 대해 내가 공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공부하면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나에게 맞는 치유법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가를 훑어보니 안 읽은 뇌과학 책이 몇 권 보였다. 뇌과학 여행자,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쇠막대가 머리를 뚫고 간 사나이, 우연한 마음. 스티븐 핑거와 월슨의 심리학 서적도 몇 권 있었는데 그건 제외했다. 왜 사다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책들이었다. 몇 년 전부터 과학책을 좀 읽기는 했지만 주로 물리학과 양자역학이었는데, 뇌과학 책은 언제 저렇게 사다 놓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뇌과학 교양서적이어서 이 책들을 통해 뇌의 구조와 기능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나중에는 점차 뇌 전문서적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비전공자들도 읽을 수 있도록 나온 전문서적도 있었는데, 국내 저자로는 박문호 박사가 유명하였다.

하여튼, 당시는 책 읽기도 어려운 상태이여서 얇은 책부터 집어 들었다. 쇠막대가 머리를 뚫고 간 사나이. 제목이 뭔가 무시무시하다. 이 책은 1848913일 미국 버몬트 주의 작은 마을 캐번디시 근처에서 철로를 만들다가 폭파 사고로 길이 1미터가 넘는 쇠막대기가 머리를 뚫고 지나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피니어스 게이지. 쇠막대기는 왼쪽 광대뼈 밑으로 들어와 눈 뒤를 지나 뇌의 앞부분을 뚫고 앞머리 한가운데, 머리털이 자라는 선 바로 위로 빠져나갔다. 뇌로 말하자면 대뇌피질의 전두엽을 뚫고 지나갔으니 전두엽의 뇌세포가 일부 사라진 셈이다. 사고 후에도 게이지는 11년을 더 살다가 죽었는데, 당시는 항생제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의학기술로는 더 살았을 것이다. 게이지는 이 사고로 유명해졌는데 특히 의사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당시 의사들은 뇌의 구조와 기능을 놓고 두 학파로 의견이 나뉘어 있었다. 한 학파는 뇌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정신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뇌의 한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그 부위에서 담당하던 기능이 다른 부위로 넘어갈 것이라고 여겼다.

다른 학파는 뇌는 특정한 일을 맡고 있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 학파의 유명 의사는 프란츠 요제프 갈인데, 갈은 자신이 연구하던 뇌 과학을 골상학이라 불렀다. 이들은 뇌의 각 영역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과 역할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골상학 머리 도표를 그리기도 했다.

그림1.  1895년에 발간된 웹스터 학술사전에 실린 골상학 머리 그림

 

골상학자들이 뇌의 부위별 기능과 역할을 알아내는 방법은 이었다. 어떤 기관이 많이 발달하면 크기가 커져서 머리뼈를 밀고 혹처럼 볼록 튀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어떤 기관이 덜 발달하면 크기가 작아져서 오목하게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조차도 이 골상학을 이용해 어떤 낯선 이를 모임에 받아들일지 말지를 판단했다.

이 두 학파는 게이지의 사례를 놓고 서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는데, 점차 골상학파들이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1861년 외과의사 폴 브라카는 뇌졸중으로 말하는 능력을 잃고 오로지 한 단어만 말할 수 있는 환자를 진찰하게 되었다. 무슨 질문을 해도 그 남자는 이라고만 대답했다. 그가 죽은 뒤 뇌를 해부한 브로카는 왼쪽 전두엽에서 손상된 조직을 발견했다. 브로카는 반골상학파에게 그 환자의 손상된 조직을 보여주고, 이어서 같은 위치에 손상을 입고 역시 말하는 능력을 잃은 다른 환자들에 관해서도 보고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자리를 브로카 영역이라 불렀고, 그 영역이 입술과 혀 근육의 움직임을 조정한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내과의사인 카를 베르니케는 브로카 영역보다 뒤편에 있는 또 다른 뇌 영역이 손상되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베르니케는 손상된 그 영역이 단어의 정신적 표상과 이해를 맡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영역은 베로니케 영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래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한 뇌 구조와 기능을 그린 그림이다 이러한 시각적 상상을 북돋우는 그림 덕분에 우리는 모두 뇌가 영역별로 기능이 정해져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그림이 아니라 내 뇌에서 일어난 출혈 때문에 이 그림이 옳은 것으로 믿고 있다. 아래 그림에 따르면 나는 왼눈 시지각 장애가 있으므로 후두엽에 출혈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맞음은 내 뇌의 MRICT 사진을 통해서 의사들이 확인해 주었다. 즉 현대 과학기술과 의학에 의해서 후두엽이 시각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후두엽 외에는 시각을 처리하는 곳이 없으므로 나는 후두엽에 집중해서 내 시야를 회복시켜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골상학파들을 지금은 국재론자들이라 부르는데, 국재局在특정 부위에 있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localization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각 영역별로 기능이 정해져 있다고 여긴다. 국재론자들은 뇌가 컴퓨터처럼 여러 부품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의 부품은 단일한 기능을 수행하므로 한 부품이 손상되면 대체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반골상학파에는 유명한 프로이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영역별로 기능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으로는 읽기나 쓰기와 같은 복잡하고 문화적으로 습득하는 정신적 활동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891년 프로이트는 실어증에 관하여라는 책을 집필하여 한 기능, 한 위치를 지지하는 기존 증거의 결함들을 보여주었으며, 읽기나 쓰기와 같은 복잡한 정신적 현상들은 별개의 피질 영역에 제한되지 않으며, 읽고 쓰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므로, 국재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읽고 쓰는 능력을 위한 뇌 중추가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신 그는 그러한 문화적으로 습득한 기능들을 수행하려면, 오히려 우리가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뇌가 자기 자신과 그 배선을 역동적으로 재조직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주장대로 뇌가 재조직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신경가소성자라고 한다. 그 중 의사이자 과학자인 바크--리타가 있다. 그는 1960년대 초에 고양이 뇌의 시각 처리 영역에 전극을 꽂아 전기 방전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시각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고 있던 연구팀에 합류했다. 누군가 손을 만졌을 때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이유는 전기 신호가 척수와 뇌로 전달되어 세포들을 발화시키기 때문이다. 이 때 발화되는 전기신호를 탐지하여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뇌의 어느 지점이 발화되는지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세포 옆에 미세전극을 꽂아두는 방법으로 탐지한다. 연구팀은 우연하게 고양이의 앞발을 건드렸을 때 시각영역이 발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고양이의 시각영역이 촉각까지 처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연한 발견에 고무된 그들은 다른 자극에도 시각영역이 발화되는지 실험하여, 소리를 들을 때에도 시각영역이 발화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니까 그들이 전극을 꽂았던 시각처리영역은 시각뿐 아니라 촉각과 청각까지 처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뇌는 다중감각적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감각 영역이 여러 감각에서 오는 신호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뇌가 다중감각적이라는 것을 나는 직접 느낄 수 있다. 나는 십여년 전부터 이명증을 겪고 있는데, 뇌출혈 발병 이후 이명의 높이가 높아졌다. 어떤 날은 뭐 이래 높아하며 깜짝 놀랄 정도로 발병 전보다 그 소리의 높이가 두 배는 높아졌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일부 뇌졸중 환자들도 발병 이후 이명을 호소한다.

바크--리타는 뇌가 다중감각적인 것에 대해서 감각 수용체에서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서 신경에 보내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전기 신호는 뇌의 언어이므로, 모든 피질에 공통적으로 전달되어 처리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아래 표는 뇌가소성자들이 뇌의 여러 부위들이 처리할 수 있는 감각을 정리한 것 중 일부이다.

 

1,2차 체감각피질(신체부위를 처리하는 감각 지도)

통증,촉각,온도,감각,압력 감각,위치 감각, 진동 감각, 운동 감각

전전두 영역

통증,실행 기능, 창조력, 계획, 감정이입, 행동, 감정적 균형, 직관

전측 대상회

통증,감정적 자기 통제, 공감 통제, 갈등 감지, 문제 해결

후두정엽

통증,감각,시각,청각 지각, 거울 뉴런(다른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볼 때 발화하는 뉴런), 자극의 내부 위치, 외부 공간 위치

보조 운동 영역

통증, 계획된 동작, 거울 뉴런

편도체

통증, 감정, 감정기억, 감정 반응, 쾌락, 시각, 후각, 후각, 감정의 극단

섬엽

통증, 편도체(바로 위에 있는 뇌 부위) 진정시키기, 온도, 가려움, 감정이입, 감정적 자기통제, 쾌락적 촉각, 감정과 신체 감각 연결하기, 거울 뉴런, 구역질

후측 대상회

통증, 시공간 인지, 자전적 기억 회수

해마

통증, 기억 저장 돕기

안와전두피질

통증, 즐거운지 불쾌한지 평가하기, 감정이입, 이해, 감정 동조

 

 

뇌는 다중감각적일 뿐 아니라 재조직 될 수도 있다. 토론토 대학의 멜라니 스프링거아 셰릴 그래디는 한 실험에서 14세에서 30세까지의 청년들을 데리고 인지 과제 검사를 실시하면서 뇌스캔을 하였다. 스캔 결과 대개 머리 양 옆에 있는 측두엽에서 인지 과제를 수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실험을 65세가 넘은 피실험자들을 데리고 실시하였다. 뇌 스캔에 따르면 그들은 인지 과제를 대개 전두엽에서 실행하였다. 특정 부위에서 처리하는 기능이 변화한 것이다. 이는 뇌가 재조직화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하버드 대학의 레오네는 눈이 보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5일 동안 눈을 가리고 완전히 맹인으로 살게 하면 뇌 영역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살펴보는 실험을 하였다. 모든 빛을 차단하자 피실험자의 시각피질이 점자를 배우는 맹인 환자의 뇌처럼 손에서 촉각을 처리하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뇌가 스스로를 며칠 만에 재조직했다는 사실이다. 레오네는 뇌 스캔으로 시각피질이 겨우 이틀 만에 촉각과 청각 신호를 처리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쉽게 말하면 눈으로부터의 감각 입력이 차단되어 뇌의 시각피질이 하는 일 없이 놀게 되자 촉각과 청각신호를 끌어다가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실험 결과를 두고 레오네는 획기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의 뇌세포가 연산자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뇌는 사실은 주어진 감각 양상을 처리하는 체계들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특정한 연산자 형태로 조직됩니다.”

한 연산자는 시각이나 청각, 촉각과 같은 단일 감각에서 오는 입력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추상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일종의 처리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주장이 진리일지 나는 알 수가 없고 사실 나에게 급한 것은 무엇이 진리인가가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였다. 국재이든 뇌가소성이든, 연산자이든 말이다. 일부 뇌세포가 죽은 나로서는 뇌세포가 연산자라는 말이 가장 이끌린다. 그럼 기능을 못하는 연산자를 제외하고 다른 연산자를 이용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실 뇌세포는 그 의사 말대로 절대로 되살아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뇌세포는 부활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 전두엽이 박살난 불쌍한 피니어스 게이지는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그의 동료들은 그가 사고 후 변했다고 증언했다. 변덕스럽고 불손했으며, 매우 상스러운 욕을 내뱉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Posted by Ch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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