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이튿날 재활의학과 의사가 다녀갔다. 간호사들처럼 팔 들어보면서요, 다리 들어보세요 하더니 ‘제가 할 게 없는데요’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담당의도 재활과 관련해서는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없었다. 결국 재활 운동은 내가 알아서 해야만 했다.
이튿날부터 몸의 기력이 돌아오기 시작하여서, 눈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눈운동은 내가 ‘눈달리기’라고 이름붙인 것이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왼쪽 눈을 윙크하듯 감는다. 왼쪽 눈을 뜨면서 동시에 이번에는 오른쪽 눈을 감는다. 보다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살짝 윙크하듯 감는 것이 아니라 세게 감아야 한다. 이 운동을 열 번 반복한 뒤, 양쪽 눈을 동시에 힘껏 감는다. 그리고 다시 왼쪽눈, 오른쪽눈 감기를 달리기하듯 하면 된다. 또 열 번 달린 뒤, 다시 양쪽 눈을 찡긋 감는다. 이렇게 한 세트를 열 번하면 하루에 백번을 하게 된다. 이 운동은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이는 때도 효과가 있다.
그 다음 운동은 ‘1X 운동’, ‘2X운동’이다. 1X 운동은 다음과 같이 한다. 왼팔을 쭉 뻗은 후 검지를 편다. 눈은 검지를 쳐다본다. 팔을 천천히 왼쪽으로 움직인다. 이 때 시선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되 검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검지가 안 보일 정도로 벌어지면 다시 팔을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시선은 왼쪽으로 움직인다. 고개가 가운데에 오면 이번에는 오른팔을 쭉 뻗어서 검지를 펴고, 팔은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시선은 왼쪽으로 움직인다.
2X운동은 1X와 방법은 같은데 좌우가 아니라 위아래로 하는 것이다. 즉 검지가 위로 움직이면 시선은 검지에 고정한 채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최대 각도로 벌어지면 풀어준다. 아래로도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된다.
처음에 1X운동을 할 때는 눈이 뻑뻑해지는 느낌이 들고 그나마 조금 보이던 눈이 더 안 보이는 것 같아서 1주일 정도 중단했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잠들어 있는(나는 결코 뇌세포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뇌세포가 담당하던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다른 뇌세포들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계속 눈운동을 해서 눈이 여기에 있음을 뇌에 알려주고, 근데 잘 안 보이니 전과 같이 잘 보이게 만들라는 신호를 주어야 했다. 그 신호 중 가장 좋은 방법이 눈운동이었다.
위의 눈운동은 눈이 피곤하고 침침하거나 시력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도 효과가 있다. 처음에는 눈운동 두 개로 시작했지만, 점점 운동방법이 늘어나 지금은 하루에 열 개 정도의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할 때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가 내 몸에 맞는 운동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좋다고 해서 내 몸에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무작정 쫓아하는 운동은 오래 할 수 없고, 효과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운동할 때 즐거워야 한다. 운동이 고통이 되면 효과가 전혀 없다. 위에서 1X, 2X운동을 소개했지만, 나는 현재 이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상하게 이 운동만 하면 금방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정신 차려 보면 어느 새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운동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운동을 억지로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마지막 원칙은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프거나 고통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중단해야 한다. 아픔을 참고 계속하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병을 만드는 것이다. 며칠 중단했다가 다시 해보고 괜찮으면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고, 그래도 아프면 그 운동은 영영 그만두어야 한다.
입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집중치료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 시야는 조금 나아졌지만 눈 앞은 여전히 잘 안 보였다. 이날 내 눈의 시야가 얼마나 축소되었는지 대강 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핸드폰 화면의 밝기를 조정하는 창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밝기를 조절하기 위해 그 창을 터치했는데, 뇌출혈 발병 전에 보이던 것보다 절반 가량 길이가 줄어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좌우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도 줄어들어 보였다.
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다갔다 한 적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탈 때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타야했고, 엘리베이터 내부가 반짝반짝 보여서 그 구조가 잘 인식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3차원 구조를 인식하는데 장애가 있었다.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 하루 뒤에 퇴원하였는데, 그 이유는 병실이 너무 시끄러워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담당의에게 얘기하자 담당의는 ‘잠을 못 자도 혈압이 올라갈 수 있으니 퇴원하시라’며 흔쾌히 퇴원을 허락해 주었다.
퇴원을 준비하면서 간호사에게 오른쪽 눈 때문에 안과진료를 받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고맙게도 당일 예약을 잡아주었다. 당시 내 오른쪽 눈 상태는 심각한 지경이었다. 팔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물이 심하게 겹쳐 보이길래 안경을 바꾸어야 하는 줄 알고, 안경점에 갔는데, 안경사들이 오른쪽 눈 시력을 전혀 측정하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안경사는 안과에 가볼 것을 권유했고, 당시 다니던 직장 근처에 있던 안과에 갔더니 오른쪽 눈 혈관이 터졌다면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몇 주 뒤 각종 고급진 눈검사를 마치고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레지던트, 인턴을 줄줄이 달고 들어와서 내 오른눈을 촬영한 필름을 잠깐 보더니 ‘방법 없어요’하더니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휘리릭 문 밖으로 사라졌다. 기습공격을 당한 것 마냥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는데 마침 나가지 않은 한 명의 레지던트가 다가와서는 녹내장 끼도 좀 있어요하는 것이었다. 뭐 방법 없다니 그냥 가는 수밖에. 두어달 동안 술을 끊고 - 아니다. 하도 술이 마시고 싶어서 막걸리 한 통씩 사다가 두어번 마셨다 - 지냈더니 점차 겹쳐 보임 현상이 사라졌고 예전과 같이 시력이 회복되었다. 그러던 오른쪽 눈은 피곤하고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검은 구름이 끼곤 했다. 검은 구름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다음날이면 사라지곤 했는데, 점점 나타날 때마다 사라지는 기간이 길어지곤 했다. 뇌출혈이 발병할 때는 검은 구름이 나타나서 사라지지 않은지 거의 1년쯤 되었다. 그 때는 오른눈 거의 대부분이 검은 구름에 덮여 있어서 오른눈은 명암만 감지할 뿐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왼눈이 뇌출혈로 시야장애가 있으니 오른눈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안과 예약을 한 것이었다.
안과에 가서 접수를 했더니 먼저 시력 검사를 하라고 했다. 놀랍게도 왼눈이 시력이 0.8이 나왔다. 물론 안경 낀 시력이다. 오른눈은 당연히 시력측정 불가였다. 잠시 뒤 의사가 오른눈을 진찰하더니 피찌꺼기가 끼어 있다며 망막 전문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검은 구름의 정체는 피찌꺼기였던 것이다. 망막 전문의 진료는 보름 뒤에 잡혔고, 그날은 바로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 앰뷸런스 타고 응급실에 실려간지 나흘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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