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은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나뉜다. 나는 뇌출혈이었는데, 그 원인을 고혈압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의사가 나에게 고혈압이 원인이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병원에서부터 혈압약을 먹었고 퇴원할 때도 몇 개월치 혈압약을 주니까 당연히 고혈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병원에 있을 때 두 번 DNA검사를 한다고 피를 채혈한 것이 기억났다. 그 검사는 내 뇌출혈의 원인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한 번은 입원 첫 날이었고, 두 번째는 퇴원하던 날이었다. 첫 번째는 잘 기억이 안 나고 두 번째는 자세히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나처럼 젊은 나이에 뇌출혈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 원인이 유전이 아닌지 살펴보기 위해 DNA 검사를 한다고 했다. 첫 번째 채혈은 내 담당의사가 원인을 빨리 알아보기 위해 한 것이고, 이것의 결과는 한 달쯤 뒤에 나온다고 했다.(근데 한 달 뒤에 의사를 만났으나 검사결과를 못 들었다. 다음에 꼭 물어보기!) 두 번째 채혈은 DNA 전체를 분석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DNA검사를 통해 나는 유전으로 인해 미래의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병을 모두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사비용만 백만 원에 달하는데 내 DNA 정보를 검사기관에 제공하는 것을 동의하면 무료라고 했다. 당연히 동의했다. 가벼운 뇌출혈 덕분에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병을 알 수 있게 되다니! 이런 행운이 있나!!

그리고 뇌졸중을 공부할수록 병원에서 왜 DNA 검사를 했는지 짐작이 갔다. 고혈압과 뇌출혈은 원인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몸은 자연치유력을 지니고 있어서, 육식이나 패스트푸드 위주의 식생활로 인한 지방이나 그리고 각종 화학물질 등이 혈관에 들어오면 인체는 혈관벽에 지방, 노폐물 등의 오염물질을 침착시켜서 혈액을 정화하고자 한다. 그렇게 몇 십 년 동안 오염물질이 혈관벽에 달라붙다보면 혈관이 너무 가늘어지게 된다. 가늘어진 혈관은 견디다 못해 오염된 혈액을 출혈시켜 혈관 밖으로 내보내거나 한 부분에 모아 굳힘으로써 나머지 혈액을 정화시키고자 한다. 즉 출혈과 혈전은 형태만 다를 뿐 혈액을 깨끗하게 해서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일어난 현상인 것이다. 하여튼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내 뇌출혈의 원인을 정확히 모르지만, 혈관에 노폐물이 너무 많이 쌓였던 것으로만 짐작하고 있다.

원인도 원인이거니와 무엇보다 피가 닿으면 뇌세포가 왜 죽는지가 궁금했다. 피부세포나 다른 장기의 세포들은 피가 닿아도 멀쩡한데 왜 뇌세포는 죽는가?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피는 뇌세포에게는 독이라는 점이다. 왜 독인지는 아직 못 알아냈다.(내가 못 알아냈다는 뜻이다)

우리 뇌의 표면에 해당하는 피질에는 신경세포(뉴런이라고도 한다)로 가득 차 있는데, 뇌출혈과 뇌경색은 이 신경세포에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이 터지거나 막힌 현상이다. 신경세포의 언어는 전기신호이고, 신경세포의 먹이는 산소인데, 그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뇌는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뇌는 위에서 바라보면 중간에 있는 이랑을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 몸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뇌는 좌뇌, 오른쪽에 있는 뇌는 우뇌이다. 뇌졸중은 우뇌보다 좌뇌에서 4배나 더 많이 일어난다. 좌뇌에 뇌졸중이 발병하면 몸의 오른쪽 마비, 언어 장애(좌뇌는 언어의 90퍼센트를 처리한다) 등이 발생한다. 그런데 나는 우뇌에 뇌출혈이 발생했다. 왜일까? 내 몸이지만 나도 모른다. 그리고 뇌출혈보다 뇌경색이 월등히 많이 일어난다. 뇌졸중 중 뇌경색이 83%, 뇌출혈이 17%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뇌에 뇌출혈이 일어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내가 경험한 것은 얘기할 수 있다. 오른쪽 눈을 누가 발로 누르는 것 같은 통증이 있었고, 다소 기억력이 떨어졌고, 계속 잠이 왔다는 것 외에는 없다. 내 뇌출혈이 경미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것을 알 수는 없었다. 더 많은 피가 쏟아진다면 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나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접했다.

다음은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가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 것을 내가 정리한 내용이다. 질 볼트 테일러는 하버드대 뇌과학자로서 37살에 좌뇌에 대량의 출혈이 발생하는 뇌출혈을 겪었다. 뇌과학자였기 때문에 뇌에서 출혈이 일어나는 과정별로 겪는 변화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때의 경험을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로 펴냈다. 이 책에는 질 볼트 테일러의 경험담과 함께 뇌졸중 환자와 보호자들이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 눈을 찌르는 햇살. 안통. 소리가 고통스러움.

- 시각, 청각 등 감각 처리에 어려움.

- 소음 등 자극에 대한 감각이 희미해짐.

- 몸이 분리되는 것 같은 희한한 감각.

- 관찰자가 된 듯한 느낌.

- 내 의식이 현실과 비밀스러운 공간 사이의 어딘가에 걸려 있는 느낌.

- 깨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몽롱한 의식. 심해지는 두통.

-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움직임이 힘들고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실룩거림.

- 똑바로 서 있기 어려움.

- 뇌의 재잘거림 멈춤.(좌뇌의 언어 중추는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건네는 데 이를 질 볼트 테일러는 뇌의 재잘거림이라 불렀다)

- 마음의 평화가 찾아옴. 평온한 행복감.

- 인지능력과 기억이 사라지고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

- 몸의 우측 마비 찾아옴. 마비 증세가 누그러지면서 엄청난 고통 찾아옴.

- 온몸에 힘이 없음.

- 잠이 쏟아짐.

- 고차원적 인지 능력 사라짐.

- 여러 가지 생각이 제멋대로 머릿속을 들락날락거림

-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기 어려움.

- 좌뇌의 언어 능력과 숫자 능력이 사라져 911이라는 숫자가 기억안남.

- 시간 감각 사라짐.

- 과거 기억 사라짐.

- 자아 상실 시작됨.(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 인지불가능)

- 시간의 흐름이 사라지고 몸이 경계가 무너져 내리면서 우주와 하나로 녹아들기 시작함.

 

질 볼트 테일러는 좌뇌에 대량의 피가 쏟아지면서 좌뇌가 담당하던, 언어, 계산, 숫자, 장기기억, 계획능력 등이 점차 사라지면서, 우뇌의 기능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테일러가 경험한 우주와 하나되는 느낌은 명상에 깊게 빠졌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명상은 뇌질환 치료에 매우 좋다) 그리고 명상을 할 때 우뇌가 활성화된다. 그래서 명상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좌뇌야 그만 조용히 해줄래라고 생각하면 우뇌가 활성화된다.

하지만 질 볼트 테일러가 말한 것은 의식과 감각계가 겪는 변화를 설명한 것으로, 피가 뇌에 쏟아지면 일어나면 뇌의 신경세포들에 일어나는 일을 설명한 것은 아니다. 내가 정작 궁금한 것은 신경세포에 일어나는 변화였다.

뇌의 피질에는 천억개의 신경세포와 일조개의 신경교세포가 있다. 피질에 피가 쏟아지면 이 세포들이 죽기 시작하는데, 피는 독과 같으므로 초단위로 세포들이 죽어나가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가 일어난다. 죽은 뇌세포들은 신호 전달을 멈추게 되고, 몇몇 세포들은 다른 세포들을 해치는 화학물질을 배출한다. 이 화학물질들은 엄청난 염증을 일으키고, 죽은 뇌세포 주위의 혈류가 지나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또 망가진 신경세포들은 신호 전달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하게 전기 신호를 보낸다. 뇌 회로가 꺼진 상태에서도 몇몇 전기 신호를 계속해서 내는데, 정상적이었을 때와는 달리 더 느린 비율로 발화한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신호를 받은 일부 세포들은 휴면 상태에 빠져든다. 이런 불규칙한 신호들은 그것이 연결된 모든 신경망들에 영향을 미치고 기능도 엉망으로 만든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일들이 피가 쏟아진 부위만이 아니라 뇌 전체의 기능을 망가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뇌는 손상을 처리하느라 지나치게 많은 포도당을 소모하여 에너지 위기를 겪게 된다. 이것을 뇌의 기능해리diaschisis라고 하는데, 총체적 충격이라는 뜻이다. (해리解離는 풀려서 떨어짐이란 뜻) 기능해리는 일종의 쇼크 상태이다. 그리고 이 쇼크 상태는 보통 6주 가량 지속된다.

쉽게 말하면 뇌세포가 죽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망가진 뇌세포들이 비정상적으로 신호를 발화함으로써 뇌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얘기이다.

에드워드 토브의 연구진은 뇌경색이 일어난 사람의 뇌스캔을 통해, 경색 부위의 신경세포들이 죽어갈 때, 아직 살아 있지만 죽은 세포에서 멀리 떨어진 세포들이 위축되거나 쇠약해지는 징후를 보일 수 있음을 밝혀냈다.

문제는 이 망가진 세포들이 다시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내 우뇌 후두엽에 뇌출혈이 일어났을 때 일부 뇌세포는 죽고 일부는 망가져서 비정상적인 신호들을 발화하고 있는데, 외부에서 시각 정보가 들어온다면 당연히 뇌세포들은 시각 정보를 처리하고자 했을 것이다. 망가진 뇌세포들은 당연히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내가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뭉텅그려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 반복되면 뇌세포는 자신들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음을 깨달아 그 기능을 정지한다. 에드워드 토브는 이것을 학습된 비사용이라고 불렀다. ‘학습된 비사용이란 쉽게 말하면 몇 번 해봤는데, 전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예 사용을 중지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왜 내가 볼 수 없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퇴원 후 한 달 뒤에 의사를 만났을 때 그는 여전히 잘 안 보이냐고 물었고 나는 시야 장애로 인해 내가 겪었던 자그마한 사건들을 설명했다. 그러자 의사는 꺄우뚱해 하면서 이 정도 뇌출혈로는 아주 피곤한 날 침침해 보이는 정도인데...”라고 하였다.

뇌출혈 직후 나의 시야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

1. 스크린 50% 축소 2. 왼쪽 눈동자 정면에서 약간 왼쪽에 있는 사물 안보임. 3. 빨리 움직이는 물체의 형태 분간 어려움. 4. 겹쳐 보임. 5. 좁은 빨대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음. 6. 침침해 보임 7. 빛에 약함. 8. 3차원 구조 인지 장애 9. 눈을 조금만 사용해도 금방 시력이 안 좋아짐.

 

눈이 카메라라면 뇌는 스크린으로,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신호를 전달하는데 스크린이 전보다 줄어들어서 보이는 것이었다. 위아래보다는 좌우의 길이가 더 많이 줄어들어 약 50% 정도 줄어들어 보였다. 이렇게 줄어들어 보이면 심각한 공간왜곡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멀리 있는데 더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시야장애를 유발하였고 겹쳐 보이는 현상도 이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의사가 말한 시야 상태와 내가 느끼는 시야 상태의 괴리가 바로 내 뇌세포들이 쇼크 상태에 빠졌을 때 겪은 학습된 비사용으로 인한 것들이었다. 죽은 뇌세포는 얼마 안 되고, 망가진 뇌세포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활동을 멈춘 것이 내 뇌의 시야 장애의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망가진 뇌세포를 고치고, ‘학습된 비사용문제를 치유하기만 하면 나는 의사말대로 피곤할 때만 침침해 보이는 정도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엄청난 희망이었다.

그리고 내 왼눈은 학습된 비사용문제를 겪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는 오른눈에 피찌꺼기가 껴있어서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다룰 생각이다.

Posted by Ch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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