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예약해 놓은 안과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뇌출혈로 왼눈 시야 장애가 생겨 생활이 어려우니 잘 안보인지 1년 된 오른눈이라도 빨리 고쳐 정상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나는 1년 전부터 오른눈에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잘 안 보여서 거의 왼눈으로만 생활을 해왔었다. 늘 눈 앞의 오른쪽에는 검은 구름이 끼어 보였지만 그러려니 하고 적응해갔다. 가끔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오른눈을 감고 왼눈으로만 보기도 했다. 그래도 운전하고 생활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퇴원할 때 진찰한 안과의사는 오른눈에 피찌꺼기가 끼어 있다고 했다. 그것만 제거하면 금방 오른눈으로 예전처럼 잘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왼눈 시야 장애는 천천히 고쳐도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결과는 듣도 보도 못한 진단이었다. .... 망막전문의 진찰결과로는 피찌꺼기가 망막 사이에 끼어서 망막이 떨어졌다고. 게다가 망막박리가 일어난 지 오래 되어서 무슨 띠 같은 것도 생겼고, 그 외 다른 영역도 마우스로 가리키면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한마디로 오른눈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망막박리는 그냥 두면 더 심해지고 끝내는 실명할 수도 있으므로, 내일이라도 당장 수술을 하자고 의사는 독촉했다. 수술을 받기로 하고 수술날짜 상담하는 직원과 상담해보니, 뇌출혈 때문에 수술시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신경과 의사에게 수술 받아도 되는지 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신경과 진찰 날짜는 211일이었다. 신경과 허락이 있어야 했으므로 일단 215일에 입원했다가 수술 받고 다음날 퇴원하는 것으로 예약했다.

그런데 망막박리 수술의 가장 큰 문제는 수술 후 1,2주는 무조건 엎드려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잘 엎드려 있느냐에 따라 오른눈의 회복 정도가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망막박리로 검색해서 수술한 사람들이 올린 후기를 보니 엎드려 지내는 것 때문에 다들 고통스러워했다. 생각해보라. 거의 수십 년을 등을 바닥에 대던지, 등받이에 기대던지 하면서 생활하던 몸이 엎드려만 지내야 하는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같으면 수술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흘 전에 노먼 도이지의 책 스스로 치유하는 뇌를 읽다가 천년 전부터 동남아시아 불교계에서 쓰던 눈 치유법을 발견했다. 그 방법을 응용하여 베이츠라는 남자가 맹인 판정을 받았던 눈의 시력을 회복했다고 적혀 있었다. 수술 전에 그 치유법을 알았더라면 일단 그걸로 시도해보고 나서 안 되면 수술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여튼, 215일에 망막박리 수술을 받았고,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으니 뒤통수가 하늘로 가도록 즉, 눈을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두면서 지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사흘째부터는 슬슬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밥 먹을 때도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고, 걸을 때도 계속 고개를 숙이고 그것도 눈이 땅으로 가도록 숙이고 걸어야 했으니 운동은 꿈도 못 꾸었다. 고개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고통이었다. 듣는 것 밖에 할 수 없어서 처음에는 팟캐스트에서 윤소라 선생님의 소라소리를 듣다가 나중에는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들었다. 덕분에 엎드려 있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1주일은 의사를 지시를 철저히 지켰지만 1주일 뒤 의사 진찰에서 경과가 좋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슬슬 몸에서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잠도 누워 자고, 어느새 고개를 들고 TV를 보고 있기도 했다.

수술 받고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망막을 붙이기 위해 눈에 주입한 가스가 다 빠지면서 오른눈의 시력이 어느 정도 인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그래도 전에 검은 구름이 끼어있을 때 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망막박리 수술 뒤 3주 후에 의사를 만났을 때는 이제 더는 엎드려 있지 않아도 된다면서, 백내장이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술 전 검색해보니 망막박리 수술을 받은 환자들 대부분이 백내장이 같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다. 사실 그때는 백내장이 무언지도 몰랐다. 그러려니 했다. 한달 보름이 지난 엊그제에서야 궁금해서 찾아보니 뿌옇게 보이는 현상 그게 백내장이었다. 의사는 일단 두고 보자며 6주 뒤에 보자고 했다. 아 참, 그리고 수술을 마치고 난 뒤 의사는 수술 중 눈의 혈관이 터져 망막이 찢어져서 레이저로 지지고 쿵짜쿵짜해서 잘 붙여놨단다. 그러면서 망막박리 비슷한 수술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 상태를 정리하자면 왼눈은 뇌출혈로 인한 시지각장애, 오른눈은 백내장이다. 그렇다면 오른눈의 상태는 나의 뇌와 왼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미국의 에드워드 토브라는 의사는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 실험은 원숭이들의 팔에서 뇌로 이어진 신경을 잘라내서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원숭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신경이 제거된 원숭이들은 팔을 건드려도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팔이 어디에 있는지도 느끼지 못하고, 당연히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토브는 한 원숭이의 왼팔 신경을 제거하면서 멀쩡한 오른팔을 삼각건으로 묶어두었다. 원숭이가 신경이 제거된 왼팔을 쓰지 않는 것이 혹시 온전한 오른팔을 사용하는 것이 더 쉬워서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토브는 온전한 팔을 삼각건으로 묶어서 못쓰게 하면 원숭이가 할 수 없이 신경줄이 끊어진 팔을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토브의 생각은 적중했다. 온전한 오른팔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원숭이는 신경줄이 끊어진 왼팔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토브는 한술 더 떠 양팔의 신경을 제거해 보기로 했다. 생존을 위해 원숭이가 신경줄이 제거된 양팔을 모두 움직일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말이다. 토브가 원숭이의 양팔과 뇌로 이어진 신경줄을 제거하자, 거짓말처럼 원숭이는 양팔을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브는 한 술 더 떠서, 이번에는 아예 척수 자체의 구심성 신경을 모두 제거해서 몸에 척수 반사를 하나도 남기지 않기로 했다. 즉 팔다리로부터 들어오는 어떠한 감각도 뇌로 전달되지 못하도록 막아 버린 것이다. 결과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예상하는 대로다. 원숭이는 팔다리 전부를 움직일 수 있었다.

토브는 한 팔만 신경줄을 없앴을 때에 원숭이가 그 팔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수술 직후 척수가 수술로 인한 척수 쇼크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 원숭이가 그 팔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라는 추측했다. 척수 쇼크는 2개월에서 6개월까지 지속되는데 이 기간에는 뇌의 신경세포들이 정상적인 신호를 내기가 어렵다. 원숭이는 척수 쇼크 상태에서도 신경이 제거된 팔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실패를 거듭했고, 대신 온전한 팔을 움직이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온전한 팔만 사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리 되면 원숭이는 신경이 잘린 팔에 대해서는 부정적 강화를 얻고, 온전한 팔에 대해서는 긍정적 강화를 얻게 된다. 그리고 뇌에서는 쓰지 않으면 잃는다는 원리에 따라, 신경이 제거된 팔을 움직이는 데 쓰였던 신경세포들의 연결이 약화되기 시작한다. 토브는 이 현상을 학습된 비사용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양팔의 신경이 제거된 원숭이들의 팔은 왜 움직였던 것일까? 토브는 이에 대해 원숭이가 그 팔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할 기회도 없이 생존하기 위해 그 팔들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추리했다. 쉽게 말하면 양 팔을 못 쓰면 먹이를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되고, 끝내 죽을 수도 있다는 생존에 대한 공포와 위협을 원숭이의 뇌가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양 팔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토브의 학습된 비사용이론에 따르면 나의 왼눈에도 같은 현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뇌출혈로 신경세포들이 쇼크에 빠졌을 때 우뇌 후두엽이 시각을 감지하지 못한다고 학습해서 일부 사용이 중단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럼 이 현상을 고칠 방법은 하나뿐이다. 원숭이 한 팔의 신경을 자르고 멀쩡한 팔을 삼각건에 묶어 두었을 때 양 팔 모두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처럼 나의 오른눈을 못쓰게 막아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오른눈은 뇌출혈 전부터 피찌꺼기가 끼어 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고, 수술 후에도 백내장으로 인해 뿌옇게 보이므로 우뇌 후두엽의 학습된 비사용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 정도로는 어림없고, 아예 빛이 하나도 못 들어갈 정도로 막았어야 하는 걸까?

토브에 따르면 백내장 정도로는 어림없다. 원숭이 실험에서 영감을 얻은 토브는 뇌졸중 환자들도 학습된 비사용에 빠진 것이라고 추측했고, 이를 고치기 위해 한쪽 마비가 온 환자의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삼각건으로 묶어 두는 구속 유도 기법을 사용하여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 기법을 사용할 때는 거의 24시간 내내 정상적인 팔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오른눈에는 빛이 하나도 못 들어갈 정도로 막았어야 학습된 비사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망막박리 수술 뒤 3주가 지나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내가 왼눈이 아니라 오른눈으로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런데 내 눈앞의 광경은 내가 오른눈으로 볼 때의 광경이 아니고, 왼눈으로만 볼 때의 광경이다. 내 오른눈은 마치 불투명한 콘탠트렌즈를 낀 것처럼 뿌옇고 군데군데 찌그러져 보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양눈을 다 뜨고 있을 때는 오른눈으로 보는 광경은 전혀 영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즉 양쪽 눈을 다 뜨면 오른눈으로 보는 뿌옇고 찌그러진 영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오른눈으로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것이 학습된 비사용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즉 왼눈으로만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왼눈으로 제대로 못보고 있다고 뇌가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10% 정도 남은 겹쳐보임 현상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 등산을 하다가 문득 나의 학습된 비사용 문제는 거울이 어쩌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먼 도이지의 책에서 거울을 이용해 환상사지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거울을 보며 내 양쪽 눈을 응시하는 시작했다. 이상하게 거울을 통해 보는 내 모습은 전혀 겹쳐보이지 않는다. 거울을 이용하는 것은 뇌에게 내 왼눈이 멀쩡하게 잘 보인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어쩌면 이 방법이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뇌졸중 치료법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건 없다. 1주일 정도는 해 봐야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내릴 수 있으므로 일단 꾸준히 해 봐야 한다.

그리고 토브의 구속 유도 기법은 현재 뇌졸중이 원인이 아닌 다른 병, 관절염, 약시 치료 등에도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간단하다. 왼눈이 약시면 오른눈을 못보게 하면 된다.

Posted by Ch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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