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15시 경, 눈을 떠 보니 방안이었다. 새벽에 택시타고 오면서 택시기사와 카풀허용에 대해 논쟁을 한 기억이 났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쯤. 아직 몸은 술에 젖어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짬뽕과 볶음밥을 시켰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 해독을 위해 애쓰는 간에 에너지를 보충해 주기 위해 밥을 많이 먹었다.

 

주문한 음식이 오는 동안 노트북을 켜고 영화를 틀었다. 누워서 영화를 얼마나 보았을까. 화면이 점점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점점 화면 속 인물이 하나의 흐느적거리는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사물과 사물의 경계가 사라진 듯 보였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섰는데 집 안의 사물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았기에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화장실 가는 것도 어려울 뻔했다.

 

119에 전화를 해야 하나, 어찌할까 고민했지만, 경과를 보기로 했다. 놀라지는 않았다. 워낙 오랫동안 오른쪽 눈 때문에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저 일시적 현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잠시 뒤,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짬뽕이 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음식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색깔만 보이고 사물을 잘 분간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살던 집이라 어림짐작으로 문을 열 수 가 있었다.

 

짬뽕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몸에 기운이 없었고, 졸음이 쏟아졌다. 일단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니 오른쪽 눈을 누가 발로 밟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눈이 빠질 것 같았다. 오른쪽 눈과 눈썹 부위만 통증이 가득했다. 시간은 새벽 세시쯤 된 것 같았다.

 

안되겠다. 119에 전화해야겠다.’

 

전화기를 들고 119를 눌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119라는 숫자를 어떻게 본 건지 신기하다.

 

“119입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어디가 아프신데요?”

 

눈이 안 보이고, 오른쪽 눈알이 빠질 것 같아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눈이 안 보이는 건 오후 3,4시부터이고, 자다가 일어났더니 두통이 너무 심해요.”

 

알았어요. 구급대원 보낼게요.”

 

전화를 끊고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더듬거리며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고, 낮에 먹다 두었던 밥을 치웠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고, 문을 여니 구급대원이 걸을 수 있냐고 물었다. 앰뷸런스로 걸어가 뒷자리에 눕자, 차량이 출발하였다. 구급대원이 평소 아픈 데가 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생각이 났다. 내가 고혈압이라는 것이. 그러자 혈압을 재겠다며 혈압기를 팔에 둘렀다.

 

이백이네요.” 속으로 생각했다. ‘맙소사

 

그리고 앰뷸런스는 잠시 뒤 집에서 가까운 분당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안과 응급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아주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이 있다더니 보다 더 가까운 병원으로 향한 것이었다.

 

응급실로 들어간 다음부터는 온통 혼돈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사물이 잘 분간되지 않아 혼란스러워서 계속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다. 두통은 여전했고, 뭐가 되었든 두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응급처치를 해달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흔한 링겔조차 꽂지 않았다. 후에 의사 얘기를 들어보니 이 때의 두통을 사람들이 표현하기를 세상에 태어나서 겪어본 적이 없는 두통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와서 어디가 아프냐, 손가락을 보이며 이게 몇 개냐라고 물었던 것 같다. 손가락은 보였는데, 몇 개 인지는 안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확실치 않다. 왼쪽 눈을 감아보라며 손가락이 몇 개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안 보인다고, 오른쪽 눈은 일 년 전부터 초전도 비문증 때문에 안 보인다고 답했다. 잠시 뒤 뇌 MRI를 찍겠다며 MRI실로 데리고 갔다. 간호사가 MRI찍어 봤냐며, 불편하지는 않았냐고 물어봤다.

 

찍은 적 있는데, 조금 답답하기는 했어요.”

 

찍을 수 있겠냐고 묻길래,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MRI실에 들어가자 촬영기사가 응급침대 위에 누워있는 내 목 양 옆으로 고개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판대기 같은 것을 갖다 대었다. 목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압박감이 느껴지는 순간 답답함이 밀려 왔다. 그리고 곧장 나를 좁은 기계 안으로 들이밀었다. 기계안으로 들어온 것이 느껴지자 눈을 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천장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순간 공포가 밀려들었다.

 

선생님, 저 좀 꺼내주세요.”

 

왜요? 답답하세요?”

 

 

잠시만요, 꺼내드릴게요.”

 

일초만 늦었어도, 몸부림을 쳤을지 모를 정도로 공포가 밀려왔다. 전에 MRI촬영할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왜 그런지 모를 일이었다. 퇴원 후 한 달 뒤에도 이 때 일을 기억하면 공포와 답답함이 밀려올 정도로 강렬하게 기억이 남았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중단되었던 촬영은 안정제를 맞고 진행되었다. 안정제를 맞았는지도 몰랐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MRI기계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떠한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MRI촬영이 끝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가 와서 결과를 알려주었다.

 

뇌출혈이네요.”

Posted by Chul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