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들은 치유가 어렵다. 그 이유는 뇌졸중이 불치의 병이라서가 아니다. 어려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환자 스스로가 치유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환자를 철저히 대상화한다. 의사들은 그저 환자가 의사 지시 잘 따르고, 주는 약 잘 먹고, 주사 잘 맞고 하기를 강권한다. 이에 길들여진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수동적 자세로 의사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뿐이다. 온갖 전문용어로 이루어진 의학은 배울 수도 어려울뿐더러 병만 나으면 다시 안 볼 터이니 귀찮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뇌졸중은 그렇게 해서는 치유가 어렵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약 한 달만 먹으면 시력이 예전처럼 되돌아와요하는 약 있으면 그저 그 약만 먹고 싶은 심정이다. 먹고 사느라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내가 왜 뇌과학까지 공부를 해야만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뇌출혈 이후 죽거나 상처 입은 뇌세포를 되살려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예전처럼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철저히 환자가 회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특히 나처럼 치유법에 관해서 어떠한 의사로부터 지시나 조언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은 혼자서 알아서 해야 했다.

온통 좌충우돌이었다. 이 방법이 맞을까,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며칠 해보다 자포자기하기 일쑤였다. 뇌에 좋은 운동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한 동영상에는 어느 서울대생이 나와서 양 손을 배에 대고 왼손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오른손은 배를 통통 두드리는 방법이 뇌에 좋다고 소개했다. 나는 열심히 따라했고 전에는 따라하지 못했던 이 방법을 금방 숙달했다. 하지만 이게 나 같은 뇌출혈 환자에게 도움이 될 까? 의문은 끝이 없었다.

하루는 뇌에 전기자극을 줄 수 있다는데, 내 뇌세포에 전기자극을 줄 방법이 없나하는 궁리도 해보았다. 전기자극을 주면 나을 것도 같았다. 검색해도 뇌에 좋은 운동법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뇌에 대해 내가 공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공부하면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나에게 맞는 치유법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가를 훑어보니 안 읽은 뇌과학 책이 몇 권 보였다. 뇌과학 여행자,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쇠막대가 머리를 뚫고 간 사나이, 우연한 마음. 스티븐 핑거와 월슨의 심리학 서적도 몇 권 있었는데 그건 제외했다. 왜 사다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책들이었다. 몇 년 전부터 과학책을 좀 읽기는 했지만 주로 물리학과 양자역학이었는데, 뇌과학 책은 언제 저렇게 사다 놓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뇌과학 교양서적이어서 이 책들을 통해 뇌의 구조와 기능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나중에는 점차 뇌 전문서적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비전공자들도 읽을 수 있도록 나온 전문서적도 있었는데, 국내 저자로는 박문호 박사가 유명하였다.

하여튼, 당시는 책 읽기도 어려운 상태이여서 얇은 책부터 집어 들었다. 쇠막대가 머리를 뚫고 간 사나이. 제목이 뭔가 무시무시하다. 이 책은 1848913일 미국 버몬트 주의 작은 마을 캐번디시 근처에서 철로를 만들다가 폭파 사고로 길이 1미터가 넘는 쇠막대기가 머리를 뚫고 지나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피니어스 게이지. 쇠막대기는 왼쪽 광대뼈 밑으로 들어와 눈 뒤를 지나 뇌의 앞부분을 뚫고 앞머리 한가운데, 머리털이 자라는 선 바로 위로 빠져나갔다. 뇌로 말하자면 대뇌피질의 전두엽을 뚫고 지나갔으니 전두엽의 뇌세포가 일부 사라진 셈이다. 사고 후에도 게이지는 11년을 더 살다가 죽었는데, 당시는 항생제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의학기술로는 더 살았을 것이다. 게이지는 이 사고로 유명해졌는데 특히 의사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당시 의사들은 뇌의 구조와 기능을 놓고 두 학파로 의견이 나뉘어 있었다. 한 학파는 뇌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정신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뇌의 한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그 부위에서 담당하던 기능이 다른 부위로 넘어갈 것이라고 여겼다.

다른 학파는 뇌는 특정한 일을 맡고 있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 학파의 유명 의사는 프란츠 요제프 갈인데, 갈은 자신이 연구하던 뇌 과학을 골상학이라 불렀다. 이들은 뇌의 각 영역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과 역할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골상학 머리 도표를 그리기도 했다.

그림1.  1895년에 발간된 웹스터 학술사전에 실린 골상학 머리 그림

 

골상학자들이 뇌의 부위별 기능과 역할을 알아내는 방법은 이었다. 어떤 기관이 많이 발달하면 크기가 커져서 머리뼈를 밀고 혹처럼 볼록 튀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어떤 기관이 덜 발달하면 크기가 작아져서 오목하게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조차도 이 골상학을 이용해 어떤 낯선 이를 모임에 받아들일지 말지를 판단했다.

이 두 학파는 게이지의 사례를 놓고 서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는데, 점차 골상학파들이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1861년 외과의사 폴 브라카는 뇌졸중으로 말하는 능력을 잃고 오로지 한 단어만 말할 수 있는 환자를 진찰하게 되었다. 무슨 질문을 해도 그 남자는 이라고만 대답했다. 그가 죽은 뒤 뇌를 해부한 브로카는 왼쪽 전두엽에서 손상된 조직을 발견했다. 브로카는 반골상학파에게 그 환자의 손상된 조직을 보여주고, 이어서 같은 위치에 손상을 입고 역시 말하는 능력을 잃은 다른 환자들에 관해서도 보고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자리를 브로카 영역이라 불렀고, 그 영역이 입술과 혀 근육의 움직임을 조정한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내과의사인 카를 베르니케는 브로카 영역보다 뒤편에 있는 또 다른 뇌 영역이 손상되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베르니케는 손상된 그 영역이 단어의 정신적 표상과 이해를 맡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영역은 베로니케 영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래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한 뇌 구조와 기능을 그린 그림이다 이러한 시각적 상상을 북돋우는 그림 덕분에 우리는 모두 뇌가 영역별로 기능이 정해져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그림이 아니라 내 뇌에서 일어난 출혈 때문에 이 그림이 옳은 것으로 믿고 있다. 아래 그림에 따르면 나는 왼눈 시지각 장애가 있으므로 후두엽에 출혈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맞음은 내 뇌의 MRICT 사진을 통해서 의사들이 확인해 주었다. 즉 현대 과학기술과 의학에 의해서 후두엽이 시각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후두엽 외에는 시각을 처리하는 곳이 없으므로 나는 후두엽에 집중해서 내 시야를 회복시켜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골상학파들을 지금은 국재론자들이라 부르는데, 국재局在특정 부위에 있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localization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각 영역별로 기능이 정해져 있다고 여긴다. 국재론자들은 뇌가 컴퓨터처럼 여러 부품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의 부품은 단일한 기능을 수행하므로 한 부품이 손상되면 대체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반골상학파에는 유명한 프로이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영역별로 기능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으로는 읽기나 쓰기와 같은 복잡하고 문화적으로 습득하는 정신적 활동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891년 프로이트는 실어증에 관하여라는 책을 집필하여 한 기능, 한 위치를 지지하는 기존 증거의 결함들을 보여주었으며, 읽기나 쓰기와 같은 복잡한 정신적 현상들은 별개의 피질 영역에 제한되지 않으며, 읽고 쓰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므로, 국재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읽고 쓰는 능력을 위한 뇌 중추가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신 그는 그러한 문화적으로 습득한 기능들을 수행하려면, 오히려 우리가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뇌가 자기 자신과 그 배선을 역동적으로 재조직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주장대로 뇌가 재조직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신경가소성자라고 한다. 그 중 의사이자 과학자인 바크--리타가 있다. 그는 1960년대 초에 고양이 뇌의 시각 처리 영역에 전극을 꽂아 전기 방전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시각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고 있던 연구팀에 합류했다. 누군가 손을 만졌을 때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이유는 전기 신호가 척수와 뇌로 전달되어 세포들을 발화시키기 때문이다. 이 때 발화되는 전기신호를 탐지하여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뇌의 어느 지점이 발화되는지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세포 옆에 미세전극을 꽂아두는 방법으로 탐지한다. 연구팀은 우연하게 고양이의 앞발을 건드렸을 때 시각영역이 발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고양이의 시각영역이 촉각까지 처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연한 발견에 고무된 그들은 다른 자극에도 시각영역이 발화되는지 실험하여, 소리를 들을 때에도 시각영역이 발화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니까 그들이 전극을 꽂았던 시각처리영역은 시각뿐 아니라 촉각과 청각까지 처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뇌는 다중감각적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감각 영역이 여러 감각에서 오는 신호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뇌가 다중감각적이라는 것을 나는 직접 느낄 수 있다. 나는 십여년 전부터 이명증을 겪고 있는데, 뇌출혈 발병 이후 이명의 높이가 높아졌다. 어떤 날은 뭐 이래 높아하며 깜짝 놀랄 정도로 발병 전보다 그 소리의 높이가 두 배는 높아졌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일부 뇌졸중 환자들도 발병 이후 이명을 호소한다.

바크--리타는 뇌가 다중감각적인 것에 대해서 감각 수용체에서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서 신경에 보내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전기 신호는 뇌의 언어이므로, 모든 피질에 공통적으로 전달되어 처리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아래 표는 뇌가소성자들이 뇌의 여러 부위들이 처리할 수 있는 감각을 정리한 것 중 일부이다.

 

1,2차 체감각피질(신체부위를 처리하는 감각 지도)

통증,촉각,온도,감각,압력 감각,위치 감각, 진동 감각, 운동 감각

전전두 영역

통증,실행 기능, 창조력, 계획, 감정이입, 행동, 감정적 균형, 직관

전측 대상회

통증,감정적 자기 통제, 공감 통제, 갈등 감지, 문제 해결

후두정엽

통증,감각,시각,청각 지각, 거울 뉴런(다른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볼 때 발화하는 뉴런), 자극의 내부 위치, 외부 공간 위치

보조 운동 영역

통증, 계획된 동작, 거울 뉴런

편도체

통증, 감정, 감정기억, 감정 반응, 쾌락, 시각, 후각, 후각, 감정의 극단

섬엽

통증, 편도체(바로 위에 있는 뇌 부위) 진정시키기, 온도, 가려움, 감정이입, 감정적 자기통제, 쾌락적 촉각, 감정과 신체 감각 연결하기, 거울 뉴런, 구역질

후측 대상회

통증, 시공간 인지, 자전적 기억 회수

해마

통증, 기억 저장 돕기

안와전두피질

통증, 즐거운지 불쾌한지 평가하기, 감정이입, 이해, 감정 동조

 

 

뇌는 다중감각적일 뿐 아니라 재조직 될 수도 있다. 토론토 대학의 멜라니 스프링거아 셰릴 그래디는 한 실험에서 14세에서 30세까지의 청년들을 데리고 인지 과제 검사를 실시하면서 뇌스캔을 하였다. 스캔 결과 대개 머리 양 옆에 있는 측두엽에서 인지 과제를 수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실험을 65세가 넘은 피실험자들을 데리고 실시하였다. 뇌 스캔에 따르면 그들은 인지 과제를 대개 전두엽에서 실행하였다. 특정 부위에서 처리하는 기능이 변화한 것이다. 이는 뇌가 재조직화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하버드 대학의 레오네는 눈이 보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5일 동안 눈을 가리고 완전히 맹인으로 살게 하면 뇌 영역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살펴보는 실험을 하였다. 모든 빛을 차단하자 피실험자의 시각피질이 점자를 배우는 맹인 환자의 뇌처럼 손에서 촉각을 처리하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뇌가 스스로를 며칠 만에 재조직했다는 사실이다. 레오네는 뇌 스캔으로 시각피질이 겨우 이틀 만에 촉각과 청각 신호를 처리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쉽게 말하면 눈으로부터의 감각 입력이 차단되어 뇌의 시각피질이 하는 일 없이 놀게 되자 촉각과 청각신호를 끌어다가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실험 결과를 두고 레오네는 획기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의 뇌세포가 연산자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뇌는 사실은 주어진 감각 양상을 처리하는 체계들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특정한 연산자 형태로 조직됩니다.”

한 연산자는 시각이나 청각, 촉각과 같은 단일 감각에서 오는 입력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추상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일종의 처리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주장이 진리일지 나는 알 수가 없고 사실 나에게 급한 것은 무엇이 진리인가가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였다. 국재이든 뇌가소성이든, 연산자이든 말이다. 일부 뇌세포가 죽은 나로서는 뇌세포가 연산자라는 말이 가장 이끌린다. 그럼 기능을 못하는 연산자를 제외하고 다른 연산자를 이용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실 뇌세포는 그 의사 말대로 절대로 되살아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뇌세포는 부활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 전두엽이 박살난 불쌍한 피니어스 게이지는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그의 동료들은 그가 사고 후 변했다고 증언했다. 변덕스럽고 불손했으며, 매우 상스러운 욕을 내뱉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Posted by Ch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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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왔다. 눈이 안 보이지만 - 정확히 말하자면 왼눈은 뇌가 못 보는 것이지만 - 시끄러운 병원을 벗어나 집에 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의사가 예정했던 것보다 다소 빨리 퇴원한 것이 마음에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다. “재발율도 4%에 불과하다는데, 뭔 일 있겠어

다만 혈압계를 사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좀 찜찜하기는 했다. 퇴원하기 전 받은 교육에서 혈압기를 구매해서 아침, 저녁으로 혈압재고 혈압수첩에 기록했다가 의사 만나러 올 때 가지고 와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구매하면 14만원, 온라인쇼핑몰에서 사면 그 반값인 7만원이었는데, 어디서 사야할지 결정하지 못해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해보자고 하고 사지 않고 그냥 집으로 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내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고, 자기와 같이 매일 앞산에 오르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조금 두려웠다. 아직 혈압이 잡히지 않았는데, 산에 올랐다가 혈압이 올라가는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만 좀 두고 보자고 했다. 그렇게 그날 밤을 무사히 지내고 날이 밝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눈과 그 주위에 약간이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뇌출혈 당일날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괜찮아지겠지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간단하게 과일과 계랸을 먹고 혈압약을 먹었다. 의사는 혈압약 세 알을 매일 아침에 먹으라고 지시하였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안통이 가시지 않았다.

혈압계가 있으면 혈압을 재보면 좋으련만

하지만 혈압계는 사오지 않았다.

안통이 심해지는게 출혈이 다시 시작된건가, 혈압이 치솟는거 아니야?’

아내는 등산을 한다고 집을 나섰고, 통증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으나 점점 안통이 커지는 것 같고, 공포가 밀려왔다.

안 되겠다아내에게 전화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퇴원할 때 받은 뇌혈관 환자를 위한 분당서울대병원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제 퇴원한 이철입니다. 안통이 심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일단 내 얘기를 들은 뒤 잠시만요하더니 예정보다 일찍 퇴원하기도 했고, 저희도 불안하니 119불러서 병원으로 오세요.”하는 것이었다.

119대원이 도착했는데, 며칠 전 새벽에 나를 병원에 데려갔던 그 대원들이었다. 앰뷸런스 안에서 혈압을 쟀더니 150이 나왔다.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중환자용 응급실로 데려가더니 CT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간호사들이 달라붙더니 양쪽 팔에 링겔을 꽂고 바로 CT실로 향했다. 촬영이 끝나고 기다리면서 간호사에게 물어 보았다. 링겔 꽂은 건 무슨 작용을 하는 건가요? 아무 작용도 안 한단다. 근데 대체 무작정 왜 꽂은 걸까? 주사 꽂느라 혈관에 구멍만 늘어났고 그 구멍은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이 드니 재생이 더디다.

몇 십 분이 지났을까. 의사가 오더니 CT상으로는 크기가 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최초 출혈 뒤 더 이상의 출혈은 없다는 뜻이었다. 의사는 지금 병실이 없으므로 입원하시고 싶으시면 병실이 날 때까지 기다리시던지, 아니면 집에 가시던지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집에 간다고 했다.

한 달 뒤 전담의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나처럼 젊은 나이에 뇌졸중이 온 환자들은 대부분 공황장애가 온단다. 심하면 약을 처방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리 심하지 않아서 약을 처방하지는 않겠단다. 그러니까 이 날의 응급실 재방문 소동은 나의 공황장애가 빚어낸 공포 때문이었다.

공황장애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는데, 한번은 퇴원하고 나서 며칠 뒤에 버스를 타고 서울을 가면서 겪었다. 처음에 서울행 좌석버스를 탔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점점 사람이 많이 타더니 입석까지 꽉 들어차는 것이었다. 사람이 꽉 들어차고 그들이 내뿜는 열기로 버스 안 공기가 답답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내 마음이 답답해지고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버스 안이 너무 좁다고 느껴졌고, 옆에 서 있는 사람 등 버스 안의 모든 사물이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2개월이 지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혈압기를 사가지고 왔다. 혈압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은 답답할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눈 앞은 여전히 잘 안 보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는데, 아내가 등산을 가자고 했다.

잘 보지는 못하는데, 어떻게 산에 가..”

스틱 잡고 천천히 가면 돼. 내가 앞에서 봐줄게.”

자신은 없었지만 따로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 일단 뭐라도 해보자’ ‘산에서 굴러 떨어지더라도 일단 가보자

나는 뇌출혈 발병 두 달 전에 담배를 완전히 끊었었고, 한 달 전부터는 등산을 시작했었다. 등산은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집 앞에 등산로가 있는 해발 4백미터 높이의 산이 있어서 운동하기가 무척 좋았다.

양 손에 스틱 두 개를 단단히 움켜 잡고 천천히 움직이며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양쪽 눈은 온통 발밑을 쳐다 보면서, 한편으로는 다음 발 디딜 곳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발병 전에 뛰어다녔을 정도로 넓게만 보였던 등산로는 무척 가느다란 실선 하나 정도의 폭으로만 느껴졌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스틱을 잡은 팔에 힘을 꽉 주어야만 했다.

어느 정도 걷기에 적응이 되자, 나는 걸으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는 뇌세포들아! 깨어나라!”

잠들어 있는 뇌세포들아! 깨어나라!”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나는 다 나을 수 있다’, ‘나는 예전처럼 볼 수 있다.’

죽은 뇌세포는 절대 살아나지 않는다고 한 그 레지던트를 생각하며 꼭 재생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결심을 다졌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3년 안에 내 몸의 세포를 전부 건강한 세포로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전에 책에서 보았던 인간이 몸은 3년 동안 먹은 음식물로 구성되어있다는 문장이 생각나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포가 바뀌는 주기는 장기마다 달랐다. 허파세포는 2~3주마다, 간세포는 5개월에 한 번씩 만들어진다. 창자세포들이 교환되는 데는 2~3일이 걸리고, 4개월에 한 번씩 중고적혈구들은 새로운 적혈구들로 바뀐다. 피부세포들은 시간당 3~4만 개씩 죽어 매년 3.6킬로그램이나 되는 세포가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발병 전에는 한 시간 걸리던 거리를 세 시간에 걸쳐 첫 날 등산을 마쳤다. 등산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쇼파에 뻗었다. 온 몸에 힘을 바짝 주고 걸었던 탓에 특히 등 위쪽으로 신경이 뻗쳐서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몇 시간을 누워 있어야만 했다.

등산을 한 번 갔다오자 자신감이 들었고, 나는 반드시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을 다질 수 있었던 점이 나에게 무척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그 이후로 45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가오나 눈이오나, 미세먼지가 아무리 심해도 하루도 등산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등산을 갔고, 영하 10도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산에 올랐다. 몹시 추운 날에는 군대 있을 때 체감기온 영하 30도의 날시에 알통구보를 시킨 소대장 생각을 하며, ‘그래 옛날에 알통구보도 했는데, 영하 십도쯤이야하며 산에 올랐다. 겨울에 산에 오를 때는 영하의 날씨에 혈압이 올라갈 수 있으므로 늘 모자를 쓰고 운동을 해야 한다. 등산을 시작한지 한 달 뒤, 나는 예전처럼 뛰어서 등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을 다시 한 시간으로 단축하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등산을 통해 내 뇌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운동을 통해 치유할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등산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숨을 헐떡일 정도로 깊은 호흡을 하게 되는데, 깊은 호흡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뇌세포들이 훨씬 건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Posted by Ch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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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이튿날 재활의학과 의사가 다녀갔다. 간호사들처럼 팔 들어보면서요, 다리 들어보세요 하더니 제가 할 게 없는데요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담당의도 재활과 관련해서는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없었다. 결국 재활 운동은 내가 알아서 해야만 했다.

이튿날부터 몸의 기력이 돌아오기 시작하여서, 눈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눈운동은 내가 눈달리기라고 이름붙인 것이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왼쪽 눈을 윙크하듯 감는다. 왼쪽 눈을 뜨면서 동시에 이번에는 오른쪽 눈을 감는다. 보다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살짝 윙크하듯 감는 것이 아니라 세게 감아야 한다. 이 운동을 열 번 반복한 뒤, 양쪽 눈을 동시에 힘껏 감는다. 그리고 다시 왼쪽눈, 오른쪽눈 감기를 달리기하듯 하면 된다. 또 열 번 달린 뒤, 다시 양쪽 눈을 찡긋 감는다. 이렇게 한 세트를 열 번하면 하루에 백번을 하게 된다. 이 운동은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이는 때도 효과가 있다.

그 다음 운동은 ‘1X 운동’, ‘2X운동이다. 1X 운동은 다음과 같이 한다. 왼팔을 쭉 뻗은 후 검지를 편다. 눈은 검지를 쳐다본다. 팔을 천천히 왼쪽으로 움직인다. 이 때 시선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되 검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검지가 안 보일 정도로 벌어지면 다시 팔을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시선은 왼쪽으로 움직인다. 고개가 가운데에 오면 이번에는 오른팔을 쭉 뻗어서 검지를 펴고, 팔은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시선은 왼쪽으로 움직인다.

2X운동은 1X와 방법은 같은데 좌우가 아니라 위아래로 하는 것이다. 즉 검지가 위로 움직이면 시선은 검지에 고정한 채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최대 각도로 벌어지면 풀어준다. 아래로도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된다.

처음에 1X운동을 할 때는 눈이 뻑뻑해지는 느낌이 들고 그나마 조금 보이던 눈이 더 안 보이는 것 같아서 1주일 정도 중단했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잠들어 있는(나는 결코 뇌세포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뇌세포가 담당하던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다른 뇌세포들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계속 눈운동을 해서 눈이 여기에 있음을 뇌에 알려주고, 근데 잘 안 보이니 전과 같이 잘 보이게 만들라는 신호를 주어야 했다. 그 신호 중 가장 좋은 방법이 눈운동이었다.

위의 눈운동은 눈이 피곤하고 침침하거나 시력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도 효과가 있다. 처음에는 눈운동 두 개로 시작했지만, 점점 운동방법이 늘어나 지금은 하루에 열 개 정도의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할 때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가 내 몸에 맞는 운동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좋다고 해서 내 몸에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무작정 쫓아하는 운동은 오래 할 수 없고, 효과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운동할 때 즐거워야 한다. 운동이 고통이 되면 효과가 전혀 없다. 위에서 1X, 2X운동을 소개했지만, 나는 현재 이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상하게 이 운동만 하면 금방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정신 차려 보면 어느 새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운동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운동을 억지로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마지막 원칙은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프거나 고통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중단해야 한다. 아픔을 참고 계속하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병을 만드는 것이다. 며칠 중단했다가 다시 해보고 괜찮으면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고, 그래도 아프면 그 운동은 영영 그만두어야 한다.

입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집중치료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 시야는 조금 나아졌지만 눈 앞은 여전히 잘 안 보였다. 이날 내 눈의 시야가 얼마나 축소되었는지 대강 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핸드폰 화면의 밝기를 조정하는 창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밝기를 조절하기 위해 그 창을 터치했는데, 뇌출혈 발병 전에 보이던 것보다 절반 가량 길이가 줄어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좌우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도 줄어들어 보였다.

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다갔다 한 적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탈 때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타야했고, 엘리베이터 내부가 반짝반짝 보여서 그 구조가 잘 인식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3차원 구조를 인식하는데 장애가 있었다.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 하루 뒤에 퇴원하였는데, 그 이유는 병실이 너무 시끄러워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담당의에게 얘기하자 담당의는 잠을 못 자도 혈압이 올라갈 수 있으니 퇴원하시라며 흔쾌히 퇴원을 허락해 주었다.

퇴원을 준비하면서 간호사에게 오른쪽 눈 때문에 안과진료를 받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고맙게도 당일 예약을 잡아주었다. 당시 내 오른쪽 눈 상태는 심각한 지경이었다. 팔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물이 심하게 겹쳐 보이길래 안경을 바꾸어야 하는 줄 알고, 안경점에 갔는데, 안경사들이 오른쪽 눈 시력을 전혀 측정하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안경사는 안과에 가볼 것을 권유했고, 당시 다니던 직장 근처에 있던 안과에 갔더니 오른쪽 눈 혈관이 터졌다면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몇 주 뒤 각종 고급진 눈검사를 마치고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레지던트, 인턴을 줄줄이 달고 들어와서 내 오른눈을 촬영한 필름을 잠깐 보더니 방법 없어요하더니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휘리릭 문 밖으로 사라졌다. 기습공격을 당한 것 마냥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는데 마침 나가지 않은 한 명의 레지던트가 다가와서는 녹내장 끼도 좀 있어요하는 것이었다. 뭐 방법 없다니 그냥 가는 수밖에. 두어달 동안 술을 끊고 - 아니다. 하도 술이 마시고 싶어서 막걸리 한 통씩 사다가 두어번 마셨다 - 지냈더니 점차 겹쳐 보임 현상이 사라졌고 예전과 같이 시력이 회복되었다. 그러던 오른쪽 눈은 피곤하고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검은 구름이 끼곤 했다. 검은 구름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다음날이면 사라지곤 했는데, 점점 나타날 때마다 사라지는 기간이 길어지곤 했다. 뇌출혈이 발병할 때는 검은 구름이 나타나서 사라지지 않은지 거의 1년쯤 되었다. 그 때는 오른눈 거의 대부분이 검은 구름에 덮여 있어서 오른눈은 명암만 감지할 뿐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왼눈이 뇌출혈로 시야장애가 있으니 오른눈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안과 예약을 한 것이었다.

안과에 가서 접수를 했더니 먼저 시력 검사를 하라고 했다. 놀랍게도 왼눈이 시력이 0.8이 나왔다. 물론 안경 낀 시력이다. 오른눈은 당연히 시력측정 불가였다. 잠시 뒤 의사가 오른눈을 진찰하더니 피찌꺼기가 끼어 있다며 망막 전문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검은 구름의 정체는 피찌꺼기였던 것이다. 망막 전문의 진료는 보름 뒤에 잡혔고, 그날은 바로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 앰뷸런스 타고 응급실에 실려간지 나흘 만이었다.

Posted by Ch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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